[정책논쟁] 최필수 교수 "한국, 중국의 시장·공장· 공급망에 걸친 복합적인 접근 필요"

'한-중 경제관계, 이대로 좋은가? 시장·공장·공급망의 복합적 접근법' 기고문에서 강조

휴먼뉴스 승인 2024.03.26 15:26 | 최종 수정 2024.03.26 15:27 의견 0
최필수 교수


동아시아재단은 최근 발간한 정책논쟁제211호에 최필수 교수(세종대학교 국제학부) 의 기고문 '한-중 경제관계, 이대로 좋은가? 시장·공장·공급망의 복합적 접근법'을 개재했다.

다음은 기고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최근 디리스킹을 비롯하여 중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은 탈중국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한국의 게으른 인식에 경종을 울린다. 한국에게는 중국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세 가지 범주 - 시장, 공장, 공급망에 걸친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중시장 의존도는 중국경제 규모에 비춰볼 때 특별히 높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의 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중점적으로 추진 했어야 할 국가적 과제이지만 2016년 사드 배치와 함께 이 목표를 포기했었다. 제조기지로서의 중국은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활용해야 할 요인이지, 한국이 중국을 떠나야 할 이유가 아니다. 만일 중국이 한국을 따라 잡았다면 중국을 떠나느냐가 아니라, 그 부문의 차세대 기술이 무엇이고 한국이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느냐의 고민을 해야 한다. 한편 공급망에서 과도한 중국의존은 시정돼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공급망 정책은 대체로 방어적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공급망 관리는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한국은 중국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중국을 벗어나야 한다는 이른바 탈(脫)중국론이 한중 경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고 미국의 대중국 기술 보이콧이 심화되면서 탈중국론은 마치 세계적 대세인 것처럼 인식됐고, 한국도 그 조류를 편하게 따라가면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2023년 봄부터 미국은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이라고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2023년 11월 미-중 정상회담이 그 결과이다. 2024년 1월에는 일본의 대규모 경제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여 리창(李强) 총리를 접견하고 양국 간 경제관계의 회복탄력성을 과시했다. 유럽이나 BRICS의 유연한 대중국 관계 설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탈중국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우리의 게으른 인식에 경종을 울린다. 무엇보다 탈중국을 표방했던 우리 자신의 경제적 사정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 안정적인 흑자를 유지하던 무역수지가 경기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취약한 구조로 바뀌었다. 요소수 등 공급망 불안요소도 나아진 바가 없다. 과연 탈중국은 바람직한지 혹은 가능한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한국에게 의미하는 세 가지 범주 - 시장, 공장, 공급망에 걸친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시장으로서의 중국

먼저 시장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총량의 19%, 제조업 부가가치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성장의 30% 이상이 발생하는 나라이다. 홍콩과 마카오 등 이른바 중화경제권을 합치면 이 비중은 더 커진다. 2023년 중국과 홍콩의 수입시장 총액은 3.3조 달러였는데 이는 3.1조 달러의 미국보다 큰 세계 1위이다. 한국의 대중수출 비중이 홍콩을 합쳐서 30% 가까이 된 적이 있었는데 가장 높았던 이 비중도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그리 높은 것이 아니다.

중국의 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한국이 중점적으로 추진 했어야 할 국가적 과제이다. 중국의 소득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변화이다. 한국이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중국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국시장은 세계 최고의 브랜드와 기술이 모여 진검승부를 벌이는 전쟁터이다. 우리 말고도 대만·일본·독일·미국 등이 중국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처지인데, 한국이 빠져나가는 자리를 누구에게 양보한다는 말인가? 한국은 중간재에서의 수출을 계속 확대하고 현재 5%에 불과한 소비재의 비중을 끌어올리려는 국가적 차원의 전면적 기획이 필요하다.

당연하다 못해 진부하게 들리는 이런 말을 새삼스레 하는 이유는 한국이 2016년 무렵 이 목표를 포기했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드(THAAD) 배치와 함께였다. 당시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서 중국이 보복을 할 수 없으리라는 논리가 등장했었다. 한국의 대중수출의 대부분이 중간재와 자본재이고 소비재의 비중은 5%에 불과하다, 만약 중국이 한국의 대중수출을 막는 경제 보복을 한다면 중간재와 자본재의 수출을 막는 셈이므로 자기 발등을 찍는 셈이 될 것이며,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재 5% 정도일 텐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우리나라 중간재와 자본재의 가성비가 매우 얄팍하여 중국 자체 제품으로 대체되기 쉽다는 것을 간과했다. 또한 5%에 불과하다는 소비재가 그 자체로 수십 억불이므로 결코 작지 않다는 것과 그 5%가 장차 10%, 20%로 성장 했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다. 사드 배치 직후에 대중수출이 눈에 띄게 감소하지 않았으므로 중국보복 불가능론이 옳은 것처럼 보인 적도 있었지만, 그 후 중국시장에서 벌어진 자동차와 스마트폰, 유통업의 존재감 약화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대중수출을 갉아먹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이제 우리는 그 때 다쳤던 중국인들의 마음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중국시장에 접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중국에는 친한(親韓)과 반한(反韓)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고, 한국 못지 않게 다른 나라들에 대한 감정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공장으로서의 중국

다음은 공장으로서 중국을 활용하는 과제이다. 공장으로서 중국의 위치는 쉽게 대체되기 어렵다. 세계 노트북의 90%, 스마트폰의 70%, 자동차의 33%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2023년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526만대를 기록하여 430만대를 기록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이러한 실적이 반영하는 중국 기업의 경쟁력 상승은 한국이 활용해야 할 요인이지 한국이 중국을 떠나야 할 이유가 아니다. 가령 2022년 LG엔솔 중국 공장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수출에서 2위를 기록했다. 중국 내수업체가 아닌 상하이 테슬라에 납품하여 얻은 실적이다. 한편 미국의 제재는 중국에서의 입지 강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한국 기업의 재중국 조업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의 경쟁상대를 제어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제재와 제재 유예를 슬기롭게 활용하여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또한 독일이 중국에게 구사하듯이 산학연에 걸친 전방위적인 접근을 통해 접점을 넓혀야 한다. 잘 만들어서 중국에 팔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필요한 기술을 초기부터 함께 개발하는 전략이 그 귀결이다.

제조업의 탈중국론의 근거로 중국의 경쟁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종종 회자된다. 실제로 중국은 더 이상 값싼 제조기지가 아니다. 중국은 꾸준한 투자를 통해 효율적인 인프라와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게 됐고 외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과 자체적인 기술개발로 과학기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2023년 3월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44개의 과학기술 영역을 평가하면서 이 중 37개에서 중국이 수위를 차지했다고 밝혀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중국의 경쟁력 향상은 한국의 비교우위의 상실로 이어졌다. 90년대에 한국의 대중 비교우위는 돈과 기술이었다.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돈에 대한 비교우위는 사라졌고 기술만 남았다. 이제 기술에 대한 비교우위도 일부에 국한돼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중국을 떠난다는 주장은 일종의 착각이다.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중국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업종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부문의 모든 설비와 특허를 중국의 CSOT라는 기업에게 매각했다. 한 때 전세계를 장악하던 한국의 LCD 산업은 중국기업에게 잠식당해 이제 더 이상 생존이 어려워졌다. 삼성은 이제 LCD는 포기하고 LED라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부문에 집중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와중에 최대 경쟁자인 중국의 BOE를 견제하기 위해 두 번째 경쟁자인 CSOT를 키워주는 고육책을 쓴 것이다. 즉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부문에서 탈중국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업종을 포기했다. 많은 부문에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만약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았다면 중국이 곧 세계적 수준이 됐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중국을 떠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그 부문의 차세대 기술이 무엇이고 한국이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저임금 가공업은 중국을 떠날 때가 벌써 지났고 실제로 대부분 떠났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는 않는다.

공급망으로서의 중국

한편 과도한 대중국 수입의존은 분명히 시정돼야 한다. 한국은행의 2022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에 대해 세계 평균(20.5%)보다 높은(29.1%) 의존도를 가지고 있다. 즉 “한국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라기 보다는 전세계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한국이 좀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체적인 의존도는 모든 나라에 대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다. 즉 한국은 대중(對中)의존도가 높다고 하기보다는 대외(對外)의존도가 높은 것이다. 어쨌든 품목별로 위험도를 판별하여 대책을 세우고 리스크가 높은 품목부터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연구기관들이 어떤 품목이 얼마나 의존도가 높은지에 대한 집계들을 밝혀 놓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의미 있는 수입선 다변화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우선 중국의 공급망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중국과의 관계를 섬세하게 관리해야 한다. 일본은 2010년 중국과 센카쿠도(댜오위다오) 영토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 중지 압박을 당한 이후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08년 90.6%의 비중을 2018년 58.0%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는 많이 낮춘 성공사례일 수도 있지만 그것 밖에 못 낮춘 실패사례일 수도 있다. 58%가 90%보다는 덜 의존하는게 맞지만 적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희토류와 같은 어떤 품목에서는 수입선 다변화 자체가 환상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령 2021년말 문제가 됐던 요소수는 2023년에도 문제가 됐다. 요소 생산에 고급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자체 생산을 하기엔 부적합하고, 다른 나라가 중국의 가성비를 따라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소의 성격상 장기비축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과의 공급망 관리는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중국의 공급망 정책은 대체로 방어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대중국 제재를 해제한다면 중국도 방어 자세를 풀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미국과 중국이 말하는 경제안보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자. 미국의 경제안보는 실은 경제이익에 가깝다. 해외에 구축된 공급망을 국내에 구축하면서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경제안보는 구멍난 공급망을 메꾸는 피곤한 작업이다. 외국의 보이콧으로 발생한 이 구멍이 잘 메꿔질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중국으로서는 외국과의 연계를 회복하고 자유주의 무역통상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

미국과 중국의 처지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중국은 갈등 자체를 키우거나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려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경제안보를 추구하면 할수록 경제적 이익을 축적하지만, 중국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과의 공급망 관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게 생각보다 쉬운 일일 수 있다. 중국 스스로 공급망 갈등의 전선(戰線)을 넓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평화적 공급망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의 입장에서 어떤 입장을 표명하거나 무언가에 동참해야 한다면 말이다.

대외의존도에 비례한 대중의존도

한국이 대중(對中)의존도를 줄여도 되는 유일한 논리적 대안은 대외(對外)의존도부터 줄이는 것이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만약 한국이 수출목표를 줄이고 그만큼 내수를 육성하는 경제로 전환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혹은 과도한 제조업을 줄이고 서비스업의 비중을 대폭 확대하려 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전환은 수출부문과 제조업을 위해 내수와 서비스업이 희생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결하는 방법이므로 한 번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실제로 재벌체제의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이런 비슷한 체제가 논의되기도 했었다. 또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탈제조업과 금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고도화가 선진적 발전의 방향인 것처럼 여겨진 적도 있었다. 시민사회 운동과 신자유주의라는 정반대 사상이 비슷한 구상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으로의 전환은 매우 어렵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근본적인 제약조건 속에서 수출을 줄인다는 것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로 인한 외환보유고의 감소는 통화 발권 능력을 제한하여 한국 거시경제의 운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이 적게 쓰고 적게 벌겠다면, 즉 경제규모를 지금보다 축소하겠다면 모를까 대외의존도를 일부러 줄이기는 매우 어렵다. 중국과의 경제관계에서도 이 한계가 작동할 수 밖에 없다.

■필자소개

최필수(세종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최필수는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학사)와 경제학과(석사)를 거쳐 일본 히토츠바시 ICS에서 경영학 석사를,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을 거쳐 현재 세종대학교 국제학부 중국통상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한국유라시아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22년 한중수교 30주년 한중미래발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중국경제와 기업 및 한중경제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중국식 현대화와 시진핑 리더십(공저)』, 『미중 전략경쟁시대 한국의 대외전략 51문답(공저)』, “일대일로 전후 중국 해외건설 관행의 건전성 변화 연구”, “일대일로, PGII, 글로벌 게이트웨이: 중국과 서방의 개도국 개발 프로그램들과 한국의 대응방안(공저)” 등이 있다.

*동아시아재단은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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