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의 휴먼에세이] (15) 엄마의 눈물

휴먼뉴스 | 기사입력 2019/10/20 [15:00]

[정경화의 휴먼에세이] (15) 엄마의 눈물

휴먼뉴스 | 입력 : 2019/10/20 [15:00]

 


엄마의 눈물

 

 나는 잘 자랐다. 발랄하고 웃기를 좋아한다. 형제들 중 제일 밝았다. 장난기도 무척 많은 아이였다. 엄마한테 야단을 맞아도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그새 잊어버리고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만다. 그러면 엄마는 ‘우리 경화는 속도 없다. 아침에 혼나고 저녁에 다 잊어버리는 구나.’라며 좋아하신다. 언니는 화가 나면 일주일은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고 고집을 피웠기에 엄마가 애를 먹었다. 엄마는 언니가 굶고 있지는 않을까 전전긍긍 했지만 나는 언니가 먹을 것 다 먹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아빠가 돌아온다. 아빠는 항상 먹을 것을 사가지고 들어오신다. 우리 4남매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떤 날은 과자, 어떤 날은 과일을 사오셨다. 또 어떤 날은 뜨끈뜨끈한 전기구이 통닭을 사오기도 했다.

 

한 곳에 모여 앉으면 아빠 무릎엔 내가 앉게 된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내가 앉았다. 아들인 남동생조차도 감히 그 자리를 탐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향한 나의 엄청난 아양을 당해낼 자가 없었던 것이다. 아빠~~ 하고 달려가 아빠 허리를 두 팔로 끌어 앉는다. 목에 매달려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해서 아빠 무릎에 앉혀지기를 반복했다. 아빠는 언제나 내 손을 만지고 또 뒤집어 보고 손바닥을 쓸어주었다. 내 발도 만지작거리셨다.
“우리 경화 발도 예쁘네.”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다리를 신나게 흔들며 다른 형제들 앞에서 의기양양했다. 나는 아빠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맞아 본적이 없다. 아빠는 늘 내 친구였고 어떤 얘기도 잘 들어주었다. 덕분에 엄마에게는 미움을 샀다. 엄마가 좋아하는 막내아들이자 장남이 앉을 자리에 항상 내가 떡 하니 앉아 있으니 못 마땅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뚝뚝한 아빠는 엄마에게는 그리 다정한 남편은 아니었다. 엄마는 어린 여덟 살 나이에 모친을 일찍 여의고 올케 밑에서 자랐다. 그 올케가 어린 내 엄마에게 잘 했을 리가 없다. 엄마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채워주지 못한 결핍의 공간은 생각보다 컸다. 그 화풀이를 더러 자식들에게 쏟아내곤 하셨다. 형제 중 엄마한테 내가 매를 좀 더 맞은 이유는 아빠가 유독 나를 사랑해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아빠를 얻었다면 엄마를 잃었다고나 할까?

 

“아빠, 나 내일 미팅한다.”
“아니 우리 딸이 미팅을 한다고?”
“강남 경기고등학교 애들이랑 하기로 했어. 원래는 걔네들이 오기로 했는데 우리가 강남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그 쪽으로 가기로 했어.” 아빠는 웃으며 2천원을 내밀며 빵이라도 사먹으라고 한다.
“에이, 아빠. 우리가 강남으로 뜨는데 당연히 빵 값이랑 음료는 걔내들이 내는거지.”
아빠는 그러는 내가 마냥 귀여운지 웃으셨다. 나에겐 언제나 친구처럼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언니나 동생들에게는 좀 달랐다. 때문에 훗날 언니가 울면서 “아빠, 언제 내 손 한 번 따뜻하게 잡아준 적 있어요? 항상 경화 손만 만져줬잖아요.”하고 난리를 쳤었다. 

 

엄마가 울고 있는지 몰랐다. 외로움에 지쳐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엄마 품을 찾았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강한 사람인줄 알았다. 엄마가 말했었다. 아빠는 몸이 약해서 엄마가 아빠를 잘 돌봐야 한다고. 나는 아빠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만 찾고 챙겼다. ‘사랑하는 내 딸’이라고 말하지 않는 엄마가 이상했다.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엄마와 나는 너무 닮았다. 100점짜리 아빠, 빵점짜리 남편. 엄마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일제시대 외할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셨다고 한다. 외할머니와 금술이 좋아서 자식 여덟을 낳았고 선비라 했다. 외할머니는 여덟째를 낳다가 태를 못 낳아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엄마 말에 의하면 탯줄을 발가락에 걸고 한동안 누워있었다고 했다. 끔찍하고 불행하며 안타까운 죽음이다. 서서히 탯줄이 말라붙어 올라갈 때 외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 어린 자식들을 남겨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 너무 가혹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외할아버지는 자식 여덟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한다. 나의 엄마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일본말 한다고 친구들에게 배척당하고 큰 올케 밑에서 많은 설움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엄마는 사랑을 받아보질 못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맹목적으로 사랑에 목말라 했을 뿐 어떻게 사랑을 이끌어 내는 줄 몰랐다. 엄마는 끊임없이 애정결핍 속에서 살아왔다.

 

아빠가 물려준 사업을 엄마가 부도내고 아빠를 찾아온 날, 아빠는 엄마를 원망했다.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문 밖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내가 울고 있는 것보다 더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위로가 필요했을 거야. 아빠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거야. 손수건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다 울고 잠시 멈췄다가 또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 기름기 없이 메말라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가 아닌 연약한 여자다. 그때서야 엄마가 보였다. 많이 아팠구나. 울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머리가 컸고 엄마를 안아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냥 아빠 집 부엌에서 엄마를 훔쳐보며 울었다. 한참을 울던 엄마가 일어나 떠나고 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플 바에야 차라리 심장이 멎어버렸으면 했다.
“아. 불쌍한 우리 엄마.”
내가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사랑이라는 표현에 그토록 서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된 후 나는 엄마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학 4학년 졸업 작품전이 열렸다. 부모님들을 초대하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엄마가 전시실로 들어왔다. 고운 얼굴의 내 엄마다. 그런데 옷을 보니 30년도 더 된 것 같은 낡은 공단 한복을 입고 왔다. 다른 엄마들은 최고급 양장으로 쫙 빼고 왔는데 엄마는 옛날 한복을 입고 왔다. 친구들과 떠들고 즐거워하던 나는 문 앞에서 주춤거리는 엄마를 보았다. 너무나 초라한 내 엄마다. 단짝 친구가 내 등을 툭 친다.
“경화야, 네 엄마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속상해서 잠깐 얼음이 되 버렸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밝게 웃으며 엄마에게 가서 팔짱을 끼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귓속말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왜 한복 입고 왔어? 요즘엔 한복 안 입어. 다 양장입지.”
“엄마는 한복이 예를 갖추는 것으로 생각했지. 근데 한복이 없더라구... 그래서 이거 입고 왔는데 영 초라하구나.”
“괜찮아. 저 요란스런 아줌마 딸들 다 별 볼일 없어. 엄마 딸이 최고야.”
먼저 교수님께 인사를 시켰다.
“교수님, 제 엄마에요” 교수님은 약간 놀란 듯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본다. 시대에 뒤떨어진 패션 감각 때문에 놀랐나보다.
“어머, 경화랑 꼭 닮으셨네요.”
친구들 엄마들도 마주치면 인사를 시켰다. 도도하게 건방을 떠는 엄마들도 있었다. 표정에 드러난다. 나는 엄마에게 꼭 붙어 있었다. 엄마가 긴장했는지 자꾸 땀을 흘린다. 휴지로 땀을 닦으니 휴지 조각이 얼굴에 붙어 있다. 나는 열심히 엄마를 살피고 휴지를 떼어내기 바빴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자기 엄마를 데리고 와서 엄마끼리 인사를 시킨다. 엄마가 단 1초라도 소외감을 느낀다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딱 붙어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나도 물론 속이 상했다. 우리 엄마도 비싼 옷 좀 사 입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수년 간 엄마는 자신을 치장하지 않았다.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를 절절히 사랑한다. 아빠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다면 엄마로부터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웠다. 엄마는 고운 자신을 버렸다. 아빠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달렸다. 자식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궂은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졸업 작품전 전시가 끝나고 엄마들이 하나 둘 떠난다.
단짝 친구 엄마는 내 친구에게 역정을 낸다.
“이년아, 너 경화 좀 본받아라. 경화, 엄마 챙기는 거 봤어? 안 봤어?”
“왜 나한테 그래?” 공연히 친구만 경을 쳤다.

 

내 단짝 친구엄마와 내 엄마를 같이 가시게 했다. 엄마 혼자 교정을 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친구엄마가 느린 걸음으로 교정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섰다. 나는 생각했다. 어서 취직을 해야겠구나. 세상으로 날아갈 때가 왔다. 그리고 엄마 짐을 나눠 질 때가 되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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